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모교인 김제 백석초등학교에 10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올해 84세인 박 전 총재는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다짐을 지킨 것이다. 참으로 모범적인 기부 실천이요, 고향 사랑이다.
그렇지 않아도 박 전 총재는 학계와 금융, 건설 등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각종 사회공헌활동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보기 드물게 존경받는 원로이다. 갈수록 메말라가고 내 것만을 챙기는 세태에서 이번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박 전 총재의 기부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나눔과 기부문화의 새로운 물결이 출렁거리길 기대한다.
박 전 총재는 60년 넘게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과 봉사의 일생을 살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소작농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논밭일, 땔감 마련 등 온갖 농사일을 하며 자랐다. 백석초를 졸업하고 이리공고까지 6년간 새벽에 집을 나와 왕복 14km를 걸어 기차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이러한 경험이 고향에 대한 애틋함으로 남아 애향의 초석이 되었으리라.
박 전 총재는 보수와 진보정권에서 두루 기용돼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중앙대 교수를 지내다 노태우 정부 때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건설부장관으로 발탁돼 주택 200만호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한국은행 총재로 한은 독립을 확고히 해, 정권에 흔들리지 않는 위상을 확립했다. 학문분야에서도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내는 등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모교인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자랑스런 동문상을 받았다. 이밖에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공헌활동을 벌였다.
눈여겨볼 대목은 10년 전부터 기부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과 2011년 백석초에 도서관 건축비 4억원과 장학금 1억원을 기부했다. 2층으로 된 이 도서관은 98명의 재학생은 물론 지역주민의 문화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2018년 김대중평화센터에 7억원, 2019년 이리공고에 7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하지만 박 전 총재는 20년 된 소형차를 직접 운전하고 오래된 양복을 입는 등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에 기부한 10억원의 장학기금은 하나은행의 신탁자산으로 표면금리 3.17%의 이자가 분기별로 백석초에 영구히 지급될 예정이다. 폐교 위기에 몰렸던 이 학교는 박 전 총재의 고향사랑 덕분에 이제 지역의 구심점이 되었다. 아름다운 기부에 박수를 보내며 다른 지역에도 이러한 사례가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