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이 죽었다.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원으로 일하던 최희석씨가 입주민의 갑질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 한참 더 살아야 할 59살의 나이였다. 두 딸을 혼자 키우며 막내딸에게 용돈 30만원을 남긴 마음 여린 가장이었다.
시작은 사소했다. 지상 주차장에 평행 주차된 입주민 심씨(49)의 차량을 옮기기 위해 차를 밀다 일어난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라 주차장이 좁아 이중 주차가 예사였다. 심씨는 “돈 받고 일하는 경비 주제에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느냐”며 폭행했다. 그리고 관리사무소로 질질 끌고 가 “당장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며칠 후에는 경비실 화장실로 데려가 CCTV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10분 넘게 폭행해 코뼈를 부러뜨렸다. 이후에도 20일 동안 괴롭혔다.
최씨는 음성유서에서 공포에 시달린 심정을 밝히며 “심씨를 엄중히 처벌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힘이 돼준 이웃 주민들에게 일일이 고마움을 표했다. 결국 심씨는 구속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이러한 사건은 비단 이 아파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악질적 갑질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국민의 70%가 생활하는 전국 어느 아파트에서나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주택관리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4년간 3000건의 갑질 폭행행위가 신고된 것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실제 우리나라 노인일자리는 많지 않다. 60살을 넘어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은 경비, 청소, 운전, 주차관리, 요양보호 등이 고작이다. 고위직에 있다 전관예우를 받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450만 고령노동자의 상당수가 이러한 단순노무직에서 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현실은 노인빈곤과 맞닿아 있다. 경비원 자리는 그나마 근무여건이나 임금 등이 가장 나은 일자리다. 그럼에도 경비원은 고용주에게 고다자(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쉬운)요,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일 뿐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6월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가 전주시내 212개 아파트단지 경비원 244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입주민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가 20%를 넘었다. 놀라운 것은 사용자로부터의 갑질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근무 중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나 동대표, 관리소장 등으로부터 부당한 상황을 경험한 경우가 50%이상이었다. 그 중 욕설, 무시, 구타 등 인권침해도 24.5%에 달했다. 이러한 갑질이 경비원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갑질을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법과 제도의 정비다. 경비원의 업무에 관한 법률은 경비업법과 공동주택관리법이 해당한다. 경비업법은 경비업무 외의 업무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엄격히 적용하면 청소 등 다른 업무는 별도의 전문업체와 계약을 하게 돼 대량해고가 불가피하다. 반면 경비 외에 주차관리와 택배관리, 청소, 분리수거, 잡초제거 등 다른 업무를 하게 되면 갑질이 속출할 수 있다. 어느 선에서 조절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노동부의 근로감독 강화나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제정, 아파트관리규약 개정 등도 필요하다.
또 하나는 입주민들의 관심이다. 최근 발간된 ‘임계장 이야기’(조정진)에서는 아파트 주민을 소수의 좋은 사람과 다수의 무관심한 사람, 극소수 나쁜 사람으로 분류한다. 모두가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마주칠 때마다 따뜻한 인사 한마디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