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도제(道制) 120년…인물 살펴보니
- 엄청난 변화의 물결 속 정치 등 여러분야에서 시대를 이끈 인물 많아
- 갈수록 지역경제 위축되고 인구 줄면서 인물 빈곤 직면
desk@jjan.kr / 등록일 : 2016.09.27 / 최종수정 : 2016.09.27 23:50:40
| | 올해는 도제(道制)가 실시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1894년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이어 1896년 갑오경장이 있었다. 이때 개혁조치로 조선 8도가 13도로 분화되었다. 즉 전라도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분리된 것이다. 60갑자(甲子)가 두 번 바뀌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구한말을 거쳐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6·25 한국전쟁, 독재시대, 민주화시대 등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건너왔다.
이와 관련,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전북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전북의 정체성과 전주’라는 시민강좌가 진행 중이다. 마침 ‘인물’에 대해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 있어 전북에 관계된 인물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이들을 보며 느낀 것은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시대를 이끈 인물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갈수록 지역경제가 위축되고 인구가 줄면서 인물 빈곤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군을 5·16 쿠데타 직후인 1963년 충남으로 뺏긴 것도 아쉽다. 정치계의 거목 유진산과 중앙대를 설립한 임영신, 빨치산 대장 이현상이 금산출신이다.
흥미로운 몇 가지 사항만을 들여다보겠다. 우선 매국노 이완용은 부자가 이곳 관찰사를 지낸 특이한 경우다. 그의 양부(養父) 이호준이 먼저 전라관찰사를 지냈고 전주 다가공원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완용 역시 1897년 제2대 전북관찰사를 지냈고 그의 묘가 익산 낭산에 있었다. 그는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전동성당이나 서해안 간척과도 관계가 깊다.
다음은 일제 때 무장활동을 벌인 인물이다. 최근 ‘암살’ ‘밀정’ 등 영화가 대박을 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백정기(부안) 이종희(김제) 김일두(순창) 정화암(김제) 등이 흑색공포단, 의열단, 광복군에서 활약했다. 백정기 의사는 중국 여순에서 1만5000톤급 일본 수송선을 폭파시키고 상해 홍구공원에서 주중(駐中)일본대사를 암살하려다 밀정의 밀고로 체포돼 옥사했다. 의열단장 김원봉이 신임했던 이종희 의사는 밀정을 처단하고 광복군 제1지대장을 지냈으나 1946년 귀국선에서 눈을 감았다.
해방공간에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계열로 활동한 거물들도 엿보인다. 김철수(부안) 백남운(고창) 정창모(전주)가 그들이다.
김철수는 일제 때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맡았고 해방 후에 이승만과 남로당 박헌영의 제휴를 위해 노력했다. 경성대학 교수를 역임했던 백남운은 좌파경제학의 대부로 해방후 월북했다. 북한에서 교육상과 과학원장, 막스레닌주의방송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냈다. 전주북중을 나온 화가 정창모는 북한예술가 최고의 영예인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또 초창기 의료계는 타지역 출신들이 주도했다. 일제 강점기에 농촌의료 봉사활동을 벌인 군산 개정병원의 이영춘(평남 용강) 김성환(경기 광주) 등이 대표적이다. 초대 전북의사회장을 지낸 명대혁(평남 대동군)과 황외과(회산병원)로 유명했던 황의섭(평남 광동군)은 평생 전주에서 인술을 펼쳤다. 그런가 하면 의료선교사로 파송되었던 설대위(미국 플로리다)는 30년 동안 예수병원에 헌신했다.
더불어 제헌의원과 초대 전북지사를 지낸 신현돈(경북 안동), 서문교회 목사로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김인전(충남 서천)과 김가전 형제 그리고 배은희(대구 달성) 초대 고시위원장, 전주에서 활동했던 이용우(서울) 이응로(충남 홍성)화백, 군산에서 활동한 박래현 김기창 부부화백, 하반영(경북 김천) 등이 눈에 띠는 인물이다.
익산에 둥지를 튼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전남 영광), 순창과 태인에서 의병활동을 벌인 최익현(경기 포천)도 뺄 수 없다.
전북은 제헌의회 당시 전국 선거구 200개 가운데 22개를 점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이 땅에 살다간 다양한 삶의 편린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전북을 다시 생각해 본다. 조상진(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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