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특별한 것이 전혀 없는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60대 중반의 아줌마입니다. 저는 모 대학교에서 20여년동안 청소일을 하다가 2018년 12 월31일 정년 퇴직 했습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는 퇴직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편하고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퇴직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집에서 빈둥빈둥 놀다 보니 왠지 몸이 근질근질 하고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이 정말정말 부럽더군요. 나같이 나이 먹은 사람을 받아 줄 곳이 어디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노인 일자리 센터를 찾아 갔습니다. 그곳에서 김미건 팀장님의 소개로 송천동에 있는 정감 빌딩으로 출근하게 되었는데 아주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도 열심히 잘 한다고 칭찬도 듣고 그곳에서 근무하신 분들하고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런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주신 김미건 팀장님 정말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저는 완주군 소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면서 주로 생활했습니다. 저는 집이 가난하여 중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았습니다. 남편과는 이상하게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어느 날 군인 아저씨 한 사람이 집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군인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보냈는데 위문편지 중 자기와 같은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를 읽고 절 찾아 온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제가 살고 있는 바로 옆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시집을 가서 보니 시부모님은 물론 시할아버지 시할머니가 계셨고 시동생이 7명이나 되는 대가족이었습니다. 남편은 8남매의 맏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위 어르신을 정성껏 모시고 시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나름대로 행복한 자정생활을 위해 노력하며 전형적이 시골 아낙네로서 살아왔습니다. 남편은 마을 이장 일을 보며 성실히 일하여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받아 비록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즐겁게 생활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예순 살 때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재활병원을 거쳐 지금은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신장이 안 좋아 1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가야합니다. 도 가끔씩 혈관이 막혀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제 저의 희망은 단 한가지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병마와 싸워 이겨 건강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또한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서라도 저의 소중한 일자리를 꼭 지켜내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전 열심히 정성껏 일을 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저의 이 소망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취업센터 임직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