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 객원논설위원의 노년의 꿈] ⑤ 정년 연장과 노인 나이
올해 2월 공기업에서 정년퇴직한 김상훈씨(61 가명)는 퇴직 3년 전부터 준비해 따놓은 전기기사 자격증 덕분에 감리회사에 재취업했다. 통신·소방기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어 취업이 수월했다. 아들도 의대 졸업 후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고 딸이 아직 취업 준비 중이나 노후 걱정은 하지 않는다.
개인회사에 다녔던 박정재씨(65 가명)는 아파트 경비원(관리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노인일자리센터를 찾았다. 상담 중 “나이가 많아 힘들겠다”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했다. “70세 넘는 사람도 있던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자 “요즘은 젊은 사람이 넘쳐나 위탁관리회사에서 뽑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파트 경비원도 65세가 실질적 정년인 셈이다. 큰 아이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둘째는 아르바이트로 전전하고 있어 노후가 걱정이다.
정년제는 노동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조직에서 자동적으로 퇴직하는 제도다. 자영업자나 농어민 등은 크게 좌우되지 않지만 위 사례처럼 직장인들에게 정년은 ‘생전 장례식’처럼 엄중하다. 생애주기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2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대부터 50대까지 직장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절반 이상이 정년(52.0%)이 승진(19.4%)보다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정년은 언제부터 도입되었을까. 정년제도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재상이 1889년 공무원의 정년을 65세로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독일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위해 청년들을 동원했다. 전쟁이 끝나고 징집된 젊은이의 처리가 문제였다. 자그마치 100만 명이 넘었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일자리를 주어야 했다. 그래서 도입된 게 나이든 사람을 내보내는 정년제도였다. 이후 영국이 1908년, 미국은 1929년 경제대공황을 맞아 실업에 허덕이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도입했다. 그러다 미국은 연령차별 금지를 위해 1986년, 영국은 2011년 정년제를 폐지했다. 일본은 60세 정년을 2013년에 65세로 늘린데 이어 2021년 4월부터 70세로 늘리기로 했다. 우리나라에 정년제가 도입된 것은 1953년이지만 2013년 연령차별금지법 개정으로 2017년부터 모든 근로자의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했다.
정년 연장 추세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핀 것은 2019년 2월 대법원 판결이었다. 대법원이 육체노동자의 손해배상 산정을 위한 개념인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올려 판결한 것이다. 이어 같은 해 9월, ‘범부처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가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기업에 60세 정년 이후 일정 연령까지 고용연장 의무를 부과하는 계속고용제도를 2022년부터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계속고용제도는 일본의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정년 이후 근로자 재고용 △65세로 정년연장 △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해 65세까지 고령근로자의 계속고용을 유도하는 것이다.
정년연장 문제는 찬반 논란이 적지 않은 ’뜨거운 감자‘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와 함께 노인 빈곤 심화, 세대간 일자리, 노사 갈등, 연금제도, 기업의 산업구조 변화 등과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찬반논리와 달리 정년연장이 청년일자리를 축소시킨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년연장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가 5명 늘어날 때 청년층(15∼29세) 일자리가 1개 줄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와는 결을 달리하지만 한국노총은 조합원 실태조사를 통해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노후가 불안한 30∼40대가 더 절실하게 정년연장을 바란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또 정년연장 혜택이 공공기관과 대기업에 국한된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 측에서는 65세 정년연장에 따른 60∼64세 추가고용으로 15.9조원의 비용이 발생하고 산업구조 변화와도 배치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년연장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현안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인구구조의 지각변동이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018년 14.3%로 고령사회에 진입한데 이어 불과 7년만인 2025년 20.4%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다. 생산가능인구, 즉 노동력 부족으로 경제 뿐 아니라 복지체계도 지속할 수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연금제도의 유지 문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들의 노후 소득보장책 중 하나인 국민연금이 2040년 재정수지 적자가 시작돼 2054년에는 고갈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금제도가 무너지면 노인 뿐 아니라 청년의 미래도 위협받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년연장, 나아가 폐지가 불가피하다는데 대부분이 동의한다. 다만 선행조건이 있다. 임금체계 개편과 고용형태의 유연화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임금체계는 오래 근무할수록 호봉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서열제다. 퇴직할 때쯤이면 취업할 때 보다 3배 정도를 받게 된다. 말하자면 1명의 퇴직으로 청년 3명을 고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생산성 기여에 따른 직무급·성과연봉제로 바꾸고 임금피크제도 확대해야 한다는데 다수 의견이 일치한다.
세계 최고령 장수국가 일본은 생애현역(Age Free)을 목표로 지난해 9월 ‘평생현역시대’ 정책을 발표했다. 정년을 연장해 70세까지 일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장기적으로 나이에 상관없이 일하는 정년폐지 쪽으로 가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단계적으로 정년을 65세로 늘리고 종국에는 폐지로 가야 할 것이다.
△ 노인 나이 기준
노인 나이는 몇 살부터일까. 노인복지제도의 모법(母法)인 노인복지법은 65세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 복지포털 ‘복지로’에 따르면 노인 연령과 관련된 복지서비스는 199종에 이른다.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독감백신 무료접종, 지하철 무료 이용 등 대부분이 65세가 기준이다. 정부에서 실시하는 공익형이나 사회서비스형 등 상당수 노인일자리사업도 65세 이상이다.
하지만 취업의 경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의해 55세 이상을 고령자, 50-54세를 준(準)고령자로 구분한다. 채용이나 해고 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서다. 주택연금은 60세(부부 중 연장자 기준)부터 가입할 수 있다. 치매간병보험 가입 연령은 보험사에 따라 70∼75세며, 75세 이상 고령운전자는 3년 주기로 면허를 갱신할 때 인지능력 자가진단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에 따라 노인 나이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게 큰 흐름이다. 대한노인회는 2015년 노인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서도 노인이 생각하는 노인연령 기준은 70∼74세가 59.4%, 75∼79세가 14.8%라고 대답했다. 69세 이하라고 답한 경우는 13.8%에 불과했다. 평균 71.4세였다. 그러나 한꺼번에 노인 기준을 올릴 경우 65∼69세의 270만 명이 혜택에서 제외돼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